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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겨울에는 역시 울

by rockorsomething 2024. 11. 16.

나는 여름보다 겨울을 더 좋아한다. 특히 한국의 여름은 옷 입는 재미가 없어 별로다. 덥고 안 덥고를 떠나, 여름옷은 기본적으로 반팔에 제한된다. 날씨의 습도나 스타일에 따라 반바지와 긴바지를 고르는 정도로 조합이 단순하다. 꾸미고 싶어도 반지, 팔찌, 신발 같은 액세서리로 보완하다 보면 오히려 밸런스가 깨지기 쉽다. 그래서 여름에는 옷을 입는 일이 어렵고 신경 쓰인다. 비유하자면, 간단한 칵테일일수록 바텐더의 실력이 드러나는 것처럼, 여름옷차림은 작은 차이로 전체적인 인상이 좌우된다.

 

반면 겨울, 특히 한국의 겨울은 다르다. 겨울엔 얼마든지 껴입을 수 있고, 겹쳐 입을수록 창의적인 조합이 가능하다. 여러 옷을 레이어링하면 한정된 옷으로도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 그래서 겨울이 다가오는 이 시점에, 내가 활용하는 겨울 옷 입기 팁을 공유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아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스티브 맥퀸의 피셔맨 니트. 그의 사진에 혹해 샀다가 실패하는 피해자는 부디 없었으면 한다.

 

이 글의 주제는 울(양모)이다. 울은 다양한 옷에 쓰이며, 대부분의 사람들 옷장에 울 니트 한 벌쯤은 있을 것이다. 울의 특징을 간단히 살펴보면, 동물의 털로 만들어진 천연 섬유라 물에 잘 젖지 않고, 곱슬한 구조 덕분에 공기층이 형성되어 보온성이 뛰어나다. 예를 들어, 아일랜드 어부들이 입었던 피셔맨 스웨터는 두껍게 짜여 차가운 바다에서도 따뜻함을 유지했다. 섬유가 물을 흡수하지 않아 빨리 마르고, 보온 효과도 탁월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영국처럼 비가 자주 내리고 추운 기후에 울이 가장 적합하다. 실제로 니트, 트위드, 타탄 등 영국을 대표하는 원단은 대부분 울로 만들어졌다.

 

나도 영국에서 지내는 동안 울 소재를 정말 좋아하게 됐다. 마지막 겨울엔 머리부터 발목까지 울로 이루어진 착장을 즐겨 입었다. 울은 폭신한 질감이 기분을 좋게 하고, 예기치 못한 비에 바지 밑단이 젖어도 실내에 들어가면 금방 마른다. 울을 잘 활용하면 영국의 춥고 습한 겨울뿐 아니라 어느 나라의 겨울도 훈훈하고 기분 좋게 보낼 수 있다.

 

ECWCS 시스템. 묘하게 왼쪽 내복바람의 아저씨의 표정이 매우 어둡다.

 

마지막으로 겨울철 보온성을 높이는 팁 하나를 소개하자면, 바로 ‘쉘(Shell)’과 ‘인슐레이션(Insulation)’의 조합이다. 이는 겉감과 충전재를 교차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미군의 ECWCS(Extended Cold Weather Clothing System)에서도 이 원리를 활용한다. ECWCS는 내복, 와플 소재의 이너웨어, 군복, 후리스, 고어텍스 재킷, 파카 등 7개의 레이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은 온기를 가두는 밀도 높은 원단과 공기를 머금어 단열 효과를 내는 원단을 교차로 입는 것이다. 이를 일상에서 쉽게 적용하는 방법은 셔츠 안에 니트를 입는 것이다. 셔츠 위에 니트를 입는 것이 보통이지만, 보온성은 반대로 입는 것이 더 뛰어나다. 다운 패딩이 겨울철 필수템인 이유도 쉘과 인슐레이션이 하나로 결합되어 간편하면서도 따뜻하기 때문이다.

 

이번 겨울에는 울 소재의 옷을 활용하고, 여유 있는 핏의 셔츠와 니트를 반대로 입어보는 건 어떨까? 남들이 모르는 나만의 방한법을 실천하는 즐거움이, 추운 겨울을 조금은 더 따뜻하게 만들어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