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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 5 ~ 맺음말 5가끔 시간이 꽤 지나도 특정한 광경이 방금 본 것처럼 생생히 기억난다. 그중 하나는 졸업작품에 열중하고 있을 때였다. 작업실 바로 옆 건물에서 학생들이 점거 농성을 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생략한다) 학생들이 ‘말 그대로’ 북치고 장구치며 농성하던 그때, 건물 뒤편 쓰레기장에서 관리인들이 분리수거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야, 이놈들아. 이것이 좌익 엘리트들이 몰락하는 이유다.’ 6지난 연애는 완전한 실패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나쁜 사람이 되기 두려웠기 때문이다. 다툼이 있을 때마다 제대로 대화도 시작하기 전에 사과부터 했다. 그 이전 연애(사실상 첫 연애)에서 헤어짐이 너무 아팠기에 ‘헤어지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 2024. 12. 24.
크리스마스 이브, 1 ~ 4 1 엄지보다는 덜 두꺼운 책이 좋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엄지보다 더 두꺼운 책을 보면 괜스레 겁이 났다. 마치 식당에서 어린아이들이 시끄럽게 굴면 눈총이라도 주겠지만, 험악하게 생긴 아저씨들이라면 잠자코 음식이나 먹게 되는 것처럼. 두꺼운 책은 펼치기가 조금 두렵다. 2 습관적으로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내 두어 번 흔들고 컵에 따라 마셨다. 남이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쓸모없는 행동인데, 예전에 주스를 자주 마실 때의 버릇이 굳어진 것 같다. 한 번은 콜라를 꺼내 흔든 뒤 뚜껑을 열었다가 보기 좋게 넘쳤다. 생각보다 위험한 습관이다. 3 글을 쓰는 것과 대화의 비슷한 점이 있다면 머릿속 생각을 끄집어내 어딘가로 던져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머리가 복잡할 때는 전혀 퇴고를 할 수가 없다. 퇴고는 글을 다.. 2024. 12. 24.
겨울에는 역시 울 나는 여름보다 겨울을 더 좋아한다. 특히 한국의 여름은 옷 입는 재미가 없어 별로다. 덥고 안 덥고를 떠나, 여름옷은 기본적으로 반팔에 제한된다. 날씨의 습도나 스타일에 따라 반바지와 긴바지를 고르는 정도로 조합이 단순하다. 꾸미고 싶어도 반지, 팔찌, 신발 같은 액세서리로 보완하다 보면 오히려 밸런스가 깨지기 쉽다. 그래서 여름에는 옷을 입는 일이 어렵고 신경 쓰인다. 비유하자면, 간단한 칵테일일수록 바텐더의 실력이 드러나는 것처럼, 여름옷차림은 작은 차이로 전체적인 인상이 좌우된다. 반면 겨울, 특히 한국의 겨울은 다르다. 겨울엔 얼마든지 껴입을 수 있고, 겹쳐 입을수록 창의적인 조합이 가능하다. 여러 옷을 레이어링하면 한정된 옷으로도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 그래서 겨울이 다가오는 이 시점.. 2024. 11. 16.
쿠리노 히로후미 스타일링 분석 0편: 잡소리 쿠리노 히로후미(栗野宏文)(1953 ~ ) 쿠리노상은 일본 유나이티드 애로우즈의 창립 멤버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할아버지이다. 그에 대한 내용은 이미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다뤘기 때문에 굳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또 그 대상을 너무 좋아하게 되면 보정이 너무 심하게 들어가기 때문에 최대한 스타일링 얘기만 하려 한다. 우리가 유명인들이 옷을 잘 입는다고 생각하는 것에 관해 미국의 뉴스레터 Blackbird Spyplane이 최근 글에서 다뤘는데, 냉정하게 보자면 대부분의 경우, 영화감독이나 아티스트들이 정말 옷을 잘 입어서라기보다는 멋있는 사람이 입은 옷이라 옷도 멋있어 보인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유명인이라 할지라도 최대한 옷만 봐야겠다 생각 중인 요즘이다.    한국 넷상에서 유.. 2024. 10. 28.
(번역) 요지 중독: 빔 벤더스와의 대화 다양한 영화감독들의 스타일링을 소개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directorfits를 운영하는 하곱 쿠루니안(Hagop Kourounian)이 2024년 2월 27일 독일의 영화감독 빔 벤더스(Wim Wenders)와 함께한 인터뷰를 한글로 번역했습니다. 전문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제가 챗GPT와 함께 번역한 내용이라 다소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원문은 여기.  슈퍼볼 일요일, 저는 큰 경기의 3 쿼터를 건너뛰고 영화계 최고의 챔피언 중 한 명과 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의상에 대한 요지 야마모토 집착의 감독, 빔 벤더스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가 옷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13분 동안 끊임없이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대답에 저는 깊은 감명을 받았고, 덕분에.. 2024. 10. 22.
글쓰기 / 내 자신에게 솔직해지기 사실 내 또래의 많은 사람들(책보다 인터넷을 먼저 접한 세대)이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글 쓰는 것을 끔찍이 싫어했다. 글 쓰기보다는 그리는 것을 더 좋아했고, 어느 순간부터 그다지 많이 그리지도 않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정규 교육을 밟지 않고 여기저기 학교를 옮겨 다니다 보니 농담 삼아 말하는 게 아닌 "0개 국어"가 되었고, 그러면서 더더욱 글을 쓰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영어든 한국어든 나의 얕은 어휘 능력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군대 전역 후 늦게 간 대학에서 이제는 과제로서 피할 수 없이 글을 쓰게 됐고, 우리 학교는 디자인과치고는 흔치 않게 작문 과제의 양이 어마어마하게 많고, 잦았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꽤나 불만족스러웠다. 남들은 패턴 자르고 가구 뚝딱뚝딱.. 2024. 10. 15.